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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시의 피아차 델 코무네, Piazza del Comune유럽_Europe/이탈리아_Italy 2026. 2. 24. 05:56
아시시의 하루는 늘, 피아차 델 코무네(Piazza del Comune)에서 시작해 피아차 델 코무네로 돌아오게 됩니다. 도시의 중심 광장이라는 말이 너무 교과서처럼 들릴까 봐 망설였지만, 막상 그곳에 서 보면 “중심”이라는 단어 말고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요. 사람들의 발걸음이 모이고 흩어지고, 골목들이 이 광장으로 흘러 들어왔다가 다시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빠져나갑니다. 그래서 저는 아시시에서 “골목 산책”을 말할 때, 언제나 이 광장을 출발점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피아차 델 코무네, Piazza del Comune
피아차 델 코무네는 단순히 예쁜 광장이 아니라, 시간의 층이 겹겹이 쌓인 무대에 가깝습니다. 한쪽에는 로마 시대의 흔적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는 미네르바 신전(Tempio di Minerva)이 서 있고, 지금은 그 안이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Santa Maria sopra Minerva) 성당으로 이어집니다. 로마의 기둥과 그 위에 덧입혀진 신앙의 시간이 한 프레임 안에 들어오는 장면은, 아시시가 “성지”이기 이전에 “역사의 도시”라는 사실을 조용히 알려 줍니다. 특히 신전의 정면 파사드가 놀랄 만큼 잘 보존되어 있어, 광장에 서서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로마가 아주 가깝게 느껴집니다.
광장 주변의 건물들도 모두 “도시의 얼굴”입니다. 팔라초 델 카피타노 델 포폴로(Palazzo del Capitano del Popolo), 토레 델 포폴로(Torre del Popolo), 팔라초 데이 프리오리(Palazzo dei Priori) 같은 중세 시청사와 공공 건물들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어서, 이곳이 오래도록 아시시의 정치와 일상, 축제와 의사결정이 오가던 장소였음을 자연스럽게 상상하게 됩니다.
하지만 여행자에게 피아차 델 코무네가 가장 매력적인 이유는 따로 있어요. 이 광장은 ‘머무는 곳’이면서 동시에 ‘흘러가는 곳’입니다. 분수 근처에 잠깐 서 있으면, 골목에서 나온 사람들이 광장을 가로질러 또 다른 골목으로 사라지는 흐름이 보입니다. 그 흐름을 따라가면, 지도 없이도 아시시의 결을 읽게 됩니다. 저는 그래서 이곳을 “길을 고르는 광장”이라고 마음속으로 불렀습니다. 오전에는 빛이 건물 정면에 또렷하게 붙어 사진이 선명하고, 오후에는 카페 테라스에 앉아 사람 구경을 하기 좋아요. 해가 기울면 석재의 색이 조금 더 따뜻해져서, 같은 장소가 전혀 다른 감정으로 다가옵니다.
골목 산책은 이렇게 해보면 특히 좋았습니다. 먼저 광장에서 미네르바 신전을 한 번 정면으로 담아두고, 오른쪽이나 왼쪽의 좁은 골목으로 일부러 “한 번만” 빠져보세요. 중요한 건 멀리 가는 게 아니라, 다시 광장으로 되돌아오는 경험입니다. 골목은 미로처럼 보이지만, 결국 중심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그 “돌아옴”이 반복될수록, 아시시는 점점 작아지고 친숙해집니다. 낯선 도시가 내 발의 리듬에 맞춰 길을 내어주는 순간이랄까요.
가끔은 이 광장이 작은 시장이나 이벤트의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올리브오일과 지역 특산물을 소개하는 행사에서 피아차 델 코무네가 ‘마켓 전시장’처럼 쓰였다는 기록도 있어요. 여행 일정이 맞아떨어진다면, 광장이 “관광 명소”가 아니라 “살아 있는 일상”으로 바뀌는 순간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아시시의 성지들을 순례하듯 걷는 날에도, 저는 중간중간 이곳으로 돌아와 숨을 고르곤 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길이 ‘마음의 깊이’를 보여준다면, 피아차 델 코무네는 ‘도시의 결’을 보여줍니다. 신앙과 역사, 생활과 여행이 섞이는 지점. 그래서 아시시에서 가장 아시시다운 장면을 한 곳만 꼽으라면, 저는 성당의 내부가 아니라 이 광장의 바깥 공기를 떠올릴 것 같아요. 돌바닥 위의 발소리, 분수 소리, 테라스의 낮은 대화들, 그리고 고요한 기둥이 함께 만드는 그 분위기 말입니다.
여행 팁을 하나만 남긴다면, 피아차 델 코무네는 “빨리 보고 지나가는 곳”이 아니라 “시간대를 바꿔 두 번 만나는 곳”이라는 것. 오전의 선명함과 저녁의 부드러움을 모두 경험하면, 아시시의 중심이 왜 여기에 있는지 몸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아시시 여행 전체 이야기는 아래 글에서 이어집니다.
이탈리아 아시시(Assisi) 여행기: https://83-invisible.tistory.com/409
기억은 풍경을 걷고, 이야기가 된다.
– Nomadia83, 어느 여정의 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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