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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금마스크를 쓴 비운의 파라오 투탕카멘(Tutankhamun), 이집트
    아프리카_Africa/이집트_Egypt 2024. 8. 16.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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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집트에 대한 판타지를 갖게 된 것은 초등학생 시절에 파라오 투탕카멘에 대한 신문 기사를 접하면서이다. 이후로도 소년왕 투탕카멘은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소설 등 여러 매체에 걸쳐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와 나의 환상을 키워주었다. 파라오 투탕카멘이 유명해진것은 그의 무덤에서 엄청난 유물이 쏟아져 나온 것도 있지만 비운의 소년왕이라는 것과 정교하게 세공된 황금마스크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파라오 투탕카멘(Pharaoh Tutankhamun)

    투탕카멘의 유물은 카이로에 있는 이집트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이집트 고대 유물박물관, 이집트 국립박물관, 카이로 박물관으로도 불리는데 같은 박물관이다. 이집트 박물관을 관람할때 엄청난 유물둘 중에서도 최고의 감동을 준 것이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였다. 이 황금가면이 금판을 망치로 두드려 형상을 만든 것이라는데 고대에 어떻게 그런 정교한 금세공 기술이 가능했는지 믿어지지 않았다.

    투탕카멘의 관 (사진출처: 문화재 방송)

     

    투트-앙크-아멘 즉, 아멘의 살아 있는 형상

    고대 이집트 제18왕조 제13대 파라오 투트 앙크 아문이 소년왕의 정식 이름이다. 보통 연음하여 "투탕카멘"이라고 발음하지만 정식으로는 투트-앙크-아멘 즉, 아멘의 살아 있는 형상이라는 뜻이다. 문헌마다 제 18왕조의 제12대 파라오로 표기한 곳도 있고 제13대 파라오라고 하는 곳도 있어 위키피디아를 찾아보니 몇 대 파라오인지 아예 언급을 피한거 같다. 고대 이집트 제 18조 제12대 혹은 제13대 파라오가 아니었을까?

    투탕카멘의 관 (사진출처: 문화재 방송)

     

    이집트의 장례 가면

    이집트에서 장례 가면은 제4왕조 (기원전 2575 - 2467년)부터 사용되었으나 신왕조 시대 (기원전 1550 - 1070년)에 이르러 보석 세공이 더 많이 사용되면서 훨씬 정교하고 화려해졌다. 이집트의 장례 가면은 망자의 시신에 도사릴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망자의 시신이 방부 처리되면 사제들이 <사자의 서>의 주문을 암송하는 사이 가면을 씌워 파라오의 머리를 보호하도록 했다.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 

    투탕카멘의 가면, 투탕카멘의 장례 가면, 혹은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는 이집트의 파라오 투탕카멘(기원전 1323 - 1332년)의 장례 가면이다. 사진을 봐도 황금색이 아름답게 빛나는 것을 볼 수 있지만 실물을 보면 정말 환상적인 예술작품을 보는 듯 하다. 이 황금마스크는 1925년 하워드 카터가 KV62 무덤에서 발견한 유물로, 현재 이집트 카이로의 이집트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집트 박물관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이 황금가면은 이집트 미술을 넘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 작품이기도 하다. 투탕카멘 가면은 호화로운 보석 재료와 뛰어난 세공기술이 결합되면서 웅장하고 복합적인 인상을 도출하고 있다. 비운의 미소년 파라오가 이 황금마스크 안에서 숨쉬고 있는 있는 듯 하고 청색 아리라인 속에는 슬픈 그의 눈빛이 살아있는 듯 하다.

    파라오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투탕카멘 황금가면의 제작

    투탕카멘의 가면은 가면 전반의 폭넓은 상감 기법으로 화려한 효과를 내고 있다. 특히 얼굴 양옆에 달린 네메스의 깃에서 잘 드러나는데, 전통적으로 파라오가 쓰는 모자였던 이 네메스는 당시로서는 매우 비싼 재료인 금과 청금석으로 만들어졌다. 

     

    깃 아래쪽에는 청금석, 루비, 흑요석, 청록유리 등의 재료로 상감 처리가 되어 있으며, 매의 머리로 장식된 황금 견장이 부착되어 있다. 이 매의 눈과 부리는 흑요석으로 제작되었으며, 하늘의 신 호루스가 동물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하여 파라오의 신성함을 나타내는 상징이 되었다.

     

    투탕카멘(Tutankhamun)의 무덤 발굴 

    1922년 11월 4일 영국의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Howard Carter)가 나일강의 서쪽 기슭 왕들의 계곡 (Valley of the King)에서 투탕카멘 왕의 무덤을 발견했다 (왕가의 계곡 KV 62호). 투탕카멘(Tutankhamun)의 묘는 도굴되지 않았던 유일한 묘라는 점에서 높은 가치를 가진다. 특이하게도 이 묘의 발견 이전에는 투탕카멘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었다.

    투탕카멘 발굴 당시 흑백사진을 컬러로 복원한 기록
    무덤 발견 당시 발굴에 동행했던 사진작가 해리 버튼이 기록한 흑백사진을 컬러로 복원한 기록

     

    투탕카멘(Tutankhamun)의 생애 

    아마르나에서 왕자로 살아가던 투탕카텐은 아버지 아크나톤과 삼촌인 스멘크카레가 죽은 후 멤피스에서 10세의 어린나이로 파라오의 자리에 오른다. 행정관 아이와 장군 호렘헤브가 이 나이 어린 파라오를 보좌하였다. 또한 이미 출산 경험이 있는 누나인 안케센파아텐과 결혼하게 된다.

    투탕카멘의 관 (사진출처: Art Chosun)

     

    투탕카멘의 치세

    치세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몇 차례의 해외원정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투탕카멘의 무덤에는 왕의 사냥, 전쟁 모습이 담겨 있다. 사막에서 사자 등을 사냥하기도 하며, 누비아와 시리아의 적들을 화살로 공격하기도 한다. 

     

    훗날 호렘헤브의 무덤이나, 누비아 총독 후이의 무덤을 통해 이러한 그림들이 실제 사실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투탕카멘 본인이 직접 원정을 이끌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투탕카멘의 유물 (사진출처: Art Chosun)

     

    장애가 있었던 투탕카멘

    투탕카멘은 근친상간의 혼인에 의해 태어난 자식으로, 오른쪽 다리에는 골질환과 왼쪽 다리에는 선천성 내반족이 있어서 걷기가 아주 힘들었으며, 선천성 기형인 구개열이 있었으며 이로 인한 언어 장애를 가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투탕카멘의 미라를 분석한 연구팀은 유전자 검사로 투탕카멘이 치명적인 말라리아의 원인기생충인 열대열원충에 감염되었었던 것을 밝혀내었다. 결국 여러 가지 유전적 질환으로 면역체계가 약했던 투탕카멘은 다리 골절상을 입은 상태에서 말라리아에 걸려 재위 9년째에 18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였다.

     

    파라오의 저주(The Curse of the Pharaohs) 

    1924년 2월 17일 투탕카멘의 미라가 세상에 나올때 엄청난 부장품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는데 이때 ‘파라오의 저주(The Curse of the Pharaohs)’라는 말도 같이 나왔다. 파라오의 저주는 미라의 안식을 방해하면 저주에 걸린다는 뜻으로 도굴꾼이나 고고학자 구별없이 이 저주에 걸리면 불운한 일을 당하거나 병에 걸리거나 죽음까지도 맞게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말이 유명해진 것은 이집트 왕가의 계곡(Valley of kings)에서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굴하여 미라를 꺼낸 사람들이 연속적으로 의문의 죽음을 맞았는데 여기서 파라오의 저주라는 이야기가 생겨났다.

     

    투탕카멘 무덤발굴의 사진 기록자 해리 버튼

    역사상 가장 유명한 고고학적 발굴로 평가되는 ‘투탕카멘 무덤 발굴’은 1922년 11월 4일에 시작됐다. 이날 무덤의 첫 번째 계단들이 발견되었다는 문장이 그의 다이어리에 기록되어 있다. 전실에서 유물을 수습한 후 하워드 카터 와 카나번卿은  1923년 2월 17일 현실을 열었다. 투탕카멘 발굴 소식이 더 생생하게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발굴과정 전체를 사진으로 담은 사진가 해리 버튼 덕분이었다.

    투탕카멘 관을 조사 중인 하워드 카터를 촬영한 해리 버튼의 사진 기록

     

    박물관 전속 사진사 해리 버튼

    1879년 해리 버튼은 영국 링컨셔에서 목공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나 우연히 같은 마을에 살던 미술사학자 로버트 헨리 커스트와 교분을 갖게 되면서 인생이 바뀌게 된다. 르네상스 시대에 관심이 많았던 커스트는 1895년 피렌체로 이사를 할 때 해리 버튼을 비서로 데리고 갔다. 버튼은 피렌체에서 예술 감각을 키우고 당시의 최신 기술인 사진 촬영술을 배우게 된다. 

     

    1910년 버튼이 이집트로 휴가를 갔을 때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그를 발굴작업 기록을 위한 박물관 전속 사진사로 고용한다. 버튼은 미국인 이집트 학자 허버트 윈록이 이끌던 발굴팀에서 사진 기록 임무를 했다.

     

    투탕카멘 무덤 발굴 전 과정을 촬영 

    영국인 고고학자 하워드 카트는 왕들의 계곡에서 발굴을 해 왔는데 카트 팀에는 전속 사진사가 없었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카터를 지원하고자 버튼을 카터 팀으로 파견했고 투탕카멘 무덤 발굴 전 과정을 사진 촬영할 수 있었다. 투탕카멘 관련된 오래된 사진들은 대부분 버튼이 촬영한 것이다.

     

    이집트 국립박물관(The Egyptian Museum)

    투탕카멘의 미이라와 그의 유물들이 보관된 곳, 그 외에도 고대로부터 온 유물들이 보관된 이집트 국립박물관에 대한 내용은 다음글에서 살펴보세요.

    이집트 국립박물관(이집트 박물관, The Egyptian Museum): https://83-invisible.tistory.com/86

     

    이집트 국립박물관(이집트 박물관, The Egyptian Museum)

    이집트 여행의 목적은 기자 대피라미드와 로제스타석을 보는 것이었다. 아침 일찍 호텔에서 박물관까지 우버택시로 이동했는데 도착하니 입장 티켓을 사려는 긴 줄이 건물 밖 대로변까지 이어

    83-invisible.tistory.com

     

    투탕카멘 展 - '투탕카멘: 파라오의 비밀'

    2021년 7월~2022년 4월 투탕카멘 무덤 발굴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가 한국을 찾았다. '투탕카멘: 파라오의 비밀'을 주제로 투탕카멘의 무덤과 유물 1300점이 발굴 당시 상태로 복원하여 선보인 전시였다. 이집트에 가도 보기 힘든 무덤과 부장품을 복원하고 미디어 테크놀로지 연출을 더해 현장 체험감을 높여 이집트 역사와 문화에 대해 폭넓게 배울 기회를 제공하였다. 

     

    이집트에 가면 투탕카멘의 유물은 카이로 박물관에서 보관중이고 무덤과 미라가 남쪽 왕가의 계곡에 유치되어 있어 두 번의 여행을 요한다. 그나마 유물이 카이로 박물관을 떠나 해외순회전시 중이라면 카이로에 가도 투탕카멘의 유물을 보기 어렵다. 

     

    이집트 문화 상징인 파라오 투탕카멘 유물은 카이로에 머물기보다 세계를 순방중일 때가 더 많아 카이로에 간다고 유물을 본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관람료는 1만3천원~1만9천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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