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코 쿠트나호라의 '세들레츠 해골성당(Sedlez Skull Cathedral)'유럽_Europe/체코_Czech Republic 2024. 9. 13. 18:20728x90
해골로 가득 채워진 성당이 있을까? 체코의 수도 프라하로 여행 갔을때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여행사를 찾아가 시티투어를 신청하였다. 구글맵과 정보검색 등으로 안전하게 프라하 투어를 할 수 있지만 현지인 가이드로 생동감 있는 설명을 들으며 도시의 구석구석을 돌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프라하에서 인기있는 골목들을 둘러보면서 가이드로부터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는것도 재밌다. 투어가 끝나고 돌아가려는데 가이드가 인간의 해골로 만들어진 가톨릭 성당에 가보겠냐고 물었다. 가톨릭에서 인간의 해골로 성당을 만들다니?
체코 쿠트나호라(Kutná Hora) 여행
우선 해골성당이라는 말에서 오싹해지면서 해골과 성당이라는 두 단어가 매치되지 않았다. '성당을 건립할때 해골로 만들었다는 말인가?' '해골 형상으로 지어진 성당이라는 말인가? 궁금증을 안고 가이드와 함께 기차를 타고 한참을 달려가니 황량한 시골길이 나오고 하차하여 약 15분 가량을 걸어가니 작은 성당이 보였다. 대성당이라고 하기에는 건물 규모가 작고 평범해보였다. 해골형상의 건물은 아니었다.
해골성당의 뾰족한 지붕 위에 해골 문양이 걸려 있는 것을 보며 이 건물이 진짜 가톨릭 성당인지 믿을 수 없었다. 세들레츠 해골 대성당(Sedlez Skull Cathedral)이라고 표현되어 있으나 시골마을의 작은 성당이 어울릴듯한 건물 안으로 들어갔는데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성당 내부 벽면은 물론이고 천장까지 모두 인간의 해골과 뼈로 가득 뒤덮여 있었다. 체코 프라하에 여행을 간다면 쿠트나호라 방문을 추천한다.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사색의 시간은 의미가 클것이기 때문이다.
해골성당 내부 벽면에 장식된 인간의 뼈 쿠트나호라의 세들레츠 해골성당(Sedlez Skull Cathedral)
세들레츠 해골성당이 원래는 1142년 보헤미아 지역 최초의 시토회 수도원 건물 일부였다. 쿠트나호라에 사람이 들어와 살게된 것은 13세기로 은광이 발견되면서라고 한다. 14~15세기에는 체코의 수도인 프라하 다음으로 크고 번영을 누렸던 도시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옛 영광을 찾아볼 수 없다. 프라하와 비교하면 정말 한적한 시골마을처럼 보였다.
1812년 지역 최초의 시토회 수도원이 담배공장이 되었다가 이후 필립 모리스에 의해 인수되어 체코 본사와 담배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해골성당의 뜰에는 묘지공원이 있는데 중세 때 흑사병이 돌았을때 수만 명이 이 묘지에 묻혔던 것이다.
해골과 뼈로 조성된 샹들리에 인간의 해골과 뼈로 가득 채워진 성당
해골성당 벽면에는 60여개가 넘는 해골과 그들의 뼈로 만든 조형물들이 작가의 작품처럼 장식되어 있었다. 천장을 올려다보니 주렁주렁 달려있는 해골 사이에 주먹보다 큰 해골들이 박혀서 거대한 샹들리에를 구성하고 있었다. 해골 크기를 보니 어린이 사망자도 많았나보다. 성당 정면에는 예수의 고난 십자가 상이 세워져 있고 그 아래 해골과 뼈들로 수북하게 언덕을 이루고 있었다. 이렇게 강렬한 죽음의 메시지는 없을 것이다.
해골과 그들의 뼈로 만든 기둥 조형물 예루살렘 성지에서 온 한 줌의 흙
해골성당 안에 모아진 해골과 뼈들의 정확한 숫자가 집계된 적이 없다. 어림잡아 적어도 4만구, 많으면 7만구로 추청된다고 한다. 해골성당에는 전해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전설이라고 표현하지 사실여부는 알 수 없다. 1278년경 체코의 한 수도원장이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골고타 언덕에서 흙을 한 줌 가져왔는데 성지의 흙은 그리스도교인에게는 축성과 치유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체코에서 중동으로의 여행이 매우 어려웠기에 성지에서 온 흙이 있다는 소식을 들은 유럽인들은 세들레츠 묘지에 묻히기는 것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라고 믿었던 모양이다.
인간의 유골이 장식품으로 전락한 이유
14세기에 약 4년간 유럽에 흑사병이 돌면서 유럽 인구 3명 중 1명이 사망했다. 병자들은 세들레츠 묘지에 묻히기를 바랬고 이 시기에 해골성당 내의 묘지에는 3만여 명의 시신이 매장되었다.
이후에 체코의 후스파에 의해 일어난 구교와 신교의 종교전쟁때 약 1만여 명이 이곳에 묻히면서 15세기 말 유골이 성당의 납골당으로 옮겨지고 16세기에 유골이 장식용 소품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현재의 성당과 납골당은 18세기 바로크 시대에 건축가 얀 블라제이 산티니에 의해 재건된 것이다.
728x90LIST'유럽_Europe > 체코_Czech Republic'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체코 쿠트나호라(Kutná Hora) 여행기 (4) 2024.09.13 체코의 수도 프라하(Prague) (8) 2024.09.10